아침 공기가 아직 차가운 시간에 눈이 번쩍 떠진다. 나이 예순이 되니, 시계보다 몸이 먼저 아침을 알아차린다. 부엌으로 조용히 걸어 나가면, 아직 고요한 집 안에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만 잔잔하게 흐른다.
“우리 딸, 오늘도 바쁘겄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쌀을 씻는다. 물에 잠긴 쌀알들이 반짝이는 걸 보고 있자니, 괜히 마음도 차분해진다.
오늘 도시락은 조금 신경을 썼다. 닭가슴살을 잘게 썰어서 양념해두고, 김밥 속으로 넣어봤다. 기름기 적고 담백하니, 바쁜 와중에도 속 편하게 먹으라고 말이다.
“아빠, 요즘 다이어트 좀 해야 돼.” 며칠 전 딸이 툭 던지듯 말했던 게 생각난다. 그 말 한마디가 이렇게 오래 남을 줄이야.
김 위에 밥을 얇게 펴고, 닭가슴살이랑 채소를 올려 돌돌 말아본다. 손에 힘을 살짝 주면서 말아야 모양이 예쁘게 나온다. “이쁘게 싸야 우리 딸이 딱 열어보고 웃지.” 괜히 그런 생각이 든다.
한 줄, 두 줄 썰어서 도시락 통에 차곡차곡 담는다. 색이 참 곱다. 소박한데도 정성이 들어가니, 음식이 달라 보인다.
옆에는 계란이랑 토마토를 볶았다. 계란을 부드럽게 풀어서 토마토랑 같이 익히면, 새콤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난다. “이건 따뜻할 때 먹어야 맛있는디… 그래도 괜찮겄지?” 조금 식혀서 담으면서도 괜히 아쉬운 마음이 든다.
후식으로는 참외도 하나 깎았다. 껍질을 벗기고 먹기 좋게 썰어 작은 통에 담는다. “입가심으로 달달한 거 먹어야 힘 나지라.” 전라도 사투리가 입에서 툭 튀어나온다.
이렇게 하나하나 담다 보면, 도시락이 그냥 밥이 아니라 마음이 되는 것 같다. 딸이 점심시간에 잠깐이라도 이걸 보면서,
“아, 우리 아빠 또 싸줬네…” 하고 웃었으면 좋겠다.
바쁜 회사에서 혼자 밥 먹을 때, 이 도시락이 조금은 위로가 되면 좋겠고.
뚜껑을 닫기 전에 한 번 더 들여다본다. “많지도 적지도 않게, 딱 좋게 담았네.” 혼자 고개를 끄덕인다.
예전에는 내가 이렇게 도시락을 싸게 될 줄은 몰랐다. 그래도 지금은 이 시간이 참 좋다. 딸을 위해 뭔가 해줄 수 있다는 게, 이 나이에 참 고맙다.
가방 옆에 도시락을 살짝 놓아두고, 출근 준비를 하는 딸을 기다린다.
“아빠, 나 간다!” “그래, 도시락 챙겨가라잉.”
딸이 바쁘게 나가면서도 도시락을 챙기는 모습을 보면, 괜히 마음이 놓인다.
문이 닫히고 나면, 다시 조용해진 집 안. 그 자리에서 한참을 서 있다가 슬며시 웃는다.
내일은 또 뭘 싸줄까 생각하면서.
내일도 따뜻한 마음을 담아 싸봐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