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삶의 흔적을 따라 걷는 교토
교토는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었다.
그곳은 ‘지금’보다 ‘조용한 시간’이 더 많이 흐르고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나는 관광 명소보다는, 오래된 골목과 조용한 절집, 낡은 찻집들을 찾아 나섰다. 일본 사람들은 삶의 무게를 소리내어 말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작은 정원 하나에, 다다미 위에 놓인 다완 하나에, 그리고 바람결에 흔들리는 스기나무 그늘 아래, 자신들의 이야기를 숨겨두고 있었다.
■ 후시미 이나리에서 만난 ‘반복의 철학’
아침 일찍 찾아간 후시미 이나리는 아직 관광객이 적어 고요했다. 붉은 도리이(신사 입구의 문)가 끝없이 이어지는 그 길을 걷다 보면, 마치 세월을 통과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수천 개의 도리이를 하나하나 통과하는 시간은 단조로웠지만, 그 안에는 반복이 주는 위안이 있었다.
우리 인생도 그렇지 않은가. 매일 같은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그 안에서 나만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
■ 철학의 길 — 사색을 부르는 골목
교토 동쪽의 ‘철학의 길’은 고즈넉한 개울길을 따라 이어진다. 철학자 니시다 기타로가 산책하며 사유를 정리하던 곳이라 해서 붙은 이름이지만, 이 길은 단지 사색만을 위한 곳이 아니다.
작은 꽃집, 고양이가 창문 틈으로 내다보는 찻집, 오래된 나무문에 달린 종소리까지 — 이 모든 것이 조용히 “살아 있음”을 말해준다.
삶이란 결국, 이런 작은 흔적들의 연결이 아닐까.
■ 산젠인 — 고요한 이끼와 무표정한 부처
오하라의 산속에 숨듯 자리한 산젠인(三千院)은, 마음속 소음을 꺼주는 장소였다. 정원에 깔린 이끼는 말없이 세월을 덮고 있었고, 나무 아래 놓인 작고 둥근 동자불(어린 스님 형상)은 웃지도 울지도 않은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그 침묵의 표정 안에, 나는 오히려 더 깊은 위로를 느꼈다.
■ 교토 사람들 —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찻집에서 마주한 노부부는 나직한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종업원도 서두르지 않았고, 옆 테이블의 손님도 말없이 차를 음미하고 있었다.
이 도시의 사람들은 떠들지 않았다. 그들은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가꾸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부럽다. 말로 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삶의 깊이. 조용한 관망 속에서 피어나는 강인함.
■ 교토는, 삶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이번 여행에서 느낀 것은 단순한 ‘경치의 아름다움’이 아니었다.
교토는 삶을 바라보는 방식 그 자체였다.
화려함보다 조용한 지속을 택하고, 소음보다는 침묵의 결을 따라가는 도시.
어쩌면 인생의 후반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교토는 다시 살아가는 법을 속삭여주는 장소인지도 모른다.